약 2년 반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SAIS에서의 석사 과정을 위해 2012년 7월말쯤 처음 워싱턴 DC에 발을 내딛었을 때, 놀랍게도 저는 영어로 에세이조차 써본 적이 없는 학생이었습니다. 심지어 어렸을 때 영어권 국가에 거주를 한 경험도 전무했지요. 서울대에서 Cultural and Social Transformation of Contemporary Korea라는 수업과 Joint Courses for Global Perspectives and Cooperation라는 수업을 들었을 때 조별로 에세이를 쓰긴 했었습니다. 하지만 두 과목 모두 거의 영어권 국가에서 살다온 학생들이 수강한 과목이었기에 저는 맡은 분량만 작성하고 다른 학우들이 최종 에디팅을 마친 뒤 보고서를 제출했었습니다. 참 용감하게도 TOEFL과 GRE 역시 writing part에 대해서 전혀 준비가 없이 시험장에서 처음 써본게 다였지요.
그랬던 제가 "석사 과정"을 미국에서 한다니 처음에 이래저래 고생을 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물론 여러 논문들을 읽으며 보고서에 필요한 용어들도 익숙해지고 하다보면 아무래도 백지상태에서 전혀 새로운 주제에 대해 글을 쓰는 것보다는 훨씬 수월하지만 여전히 ctrl+art+tab을 이용한 네이버 영어사전 신공을 발휘하며 이래저래 보고서를 써내고는 했지요. 그렇게 용케 주어진 과제들을 해가긴 했지만 항상 제출기한에 쫓기듯 쓰거나 혹은 넘겨서 내는 경우도 있었기에 작성한 보고서를 수정하거나 퇴고할 시간은 없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교수님들도 읽으시면서 얼마나 힘드셨을지요... (서울대에 다닐 때 중국인 유학생 언니의 보고서를 몇 번 퇴고해준 적이 있는데 물론 어떤 의미인지는 짐작이 되지만 글이 매끄럽게 읽히지 않아 시간이 많이 걸렸던 적이 있습니다.)
그래도 두 번째 학기와 세 번째 학기에는 조금 더 여유가 생겼던 덕분인지, 혹은 그저 힘들게 읽으실 교수님들에 대한 죄책감 때문인지 보고서를 그냥 제출하지는 않았고, 친한 친구들에게 부탁해서 한번씩 수정해서 내기는 했습니다. 하지만 제가 작성한 보고서를 그 친구들에게 이메일로 보내면 대개 한번 검토해보고 그 상태 그대로 제출했기에 글의 문장들이 여전히 온전히 저의 것이라고 할 수는 없었지요. 따라서 결과물의 상태는 조금 더 좋아졌을 망정, 제 작문 실력은 아마 크게 나아지지 않았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안타까우면서 그래도 다행인 것은 그래도 마지막 학기에 비로소 writing center를 찾아간 것입니다. 그리고 열심히 들락날락한 덕에 이 학기에는 매 보고서마다 수정해서 제출할 수 있었고, 거의 50페이지에 육박했던 수료 논문(capstone paper) 역시 그런대로 완성도있게 작성할 수 있었습니다. 한편, 이렇게 writing center를 꾸준히 이용하면서 얻은 가장 커다란 수확은 보고서를 작성할 때 단지 문법(grammar)적 오류를 수정하는 것을 넘어서서, 단어 선택, 그리고 어법이나 작문 스타일(style) 역시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된 것 입니다. 문법적으로 전혀 틀리지 않은 문장과 나의 생각을 가장 효과적으로 독자에게 전달하는 문장에는 큰 차이가 있지요.
이는 Grammar check이 아니라 editing을 해주는 고마운 writing tutor를 만난 덕이었습니다. (writing center에는 세 네명의 tutor가 있는데, 각자 문장 스타일도 다르고 editing 스타일도 달라서 자신에게 맞는 tutor를 찾는 것이 중요합니다. 제 tutor는 제가 쓰고있던 보고서의 주제와 관련하여 공부를 했던 친구였고, 따라서 주제에 대한 이해도가 높았기에 grammar check 이상의 editing이 가능했던 것 같아요.) Tutor와의 만남은 회당 주로 30분에서 한 시간 내외였고, 제가 전달하고자 하는 것이 정확히 무엇인지 명확히 한 후에 문장의 태(수동태와 능동태), 목적어에 어울리는 형용사 선택 및 추가, 좀더 효과적인 동사의 선택 등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예컨대
- When a conflict is entrapped in the notion of intractability, it is hard to get the conflict out of the escalating cycle without any significant event.
- When the intractability of a conflict is widely accepted, it is hard to get the conflict out of the escalating cycle without any significant event.
처럼 위의 문장을 아래와 같이 수정하면 훨씬 의미 전달이 명확해지지요. 또 다른 예를 들면,
- The turning point was made when they knew that they were in a negative-sum situation and they cannot even achieve a zero-sum victory.
- The turning point occurred when Boko Haram and the government recognized that they were in a negative-sum situation and they would not be able to achieve even a zero-sum victory.
과 같은 식 입니다. 대명사 주어가 사용될 때도 있지만 주어를 확실히 해주는 것이 더 의미 전달이 명확한 상황이었고, 더 세련된 단어 선택이 이루어졌음을 볼 수 있습니다.
이처럼 editing의 중요성을 알게된 후에 만난 책이 바로 Grammar Girl's Quick and Dirty Tips입니다. Mignon Fogarty는 동명의 팟캐스트와 홈페이지도 운영하고 있는데, 영어권 사람들이 영작을 할 때 범하기 쉬운 실수나 문법적 오류 등에 대해 재미있게 설명합니다. 그리고 방송에서 다루어진 내용들을 엮어 발간한 것이 이 책이지요. 저 스스로 보다 세련된 문장을 구사할 수는 없을까에 대해 고민해왔기에 이 책을 만났을 때 어찌나 반가웠는지 모릅니다. 굉장히 쉽고, 가볍게 읽기 쉬운 문체로 쓰여져 있고, 예문 등을 보면 가끔 육성으로 "푸핫"하고 웃음이 터질만큼 재미있습니다. (문법책이 재미있다니요!) 저는 사실 다른 일도 하고 슬렁슬렁 읽느라 나흘이나 걸렸지만 두껍지 않아서 사실 맘잡고 보면 몇 시간이면 다 볼 수 있을 정도입니다.
책에서 소개된 팁 중 재미있었던 것 한 가지를 적어보도록 하겠습니다. 문장 부호들을 언제 어떻게 써야할지 굉장히 헷갈릴 때가 많은데, 그 중 dash(--)에 대해 책은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A dash, it's quite a dramatic thing. A dashing young man is certainly not an ordinary young man, and if you're dashing off to the store, you're not just going to the store, you're going in a flurry. A dash interrupts the flow of the sentence and tells the reader to get ready for some important or dramatic statement.
즉,
"Squiggly has two favorite Thanksgiving dishes (wait for it; wait for it) -- stuffing and green-been casserole." Wow!
와 다음과 같이 dash(--)의 자리에 colon(:)이 온 것과는 어감이 굉장히 다른 것이죠.
"Squiggly has two favorite Thanksgiving dishes(and, now I'm going to tell you what they are): playing stuffing and green-been casserole."
물론 이 책을 한번 읽었다고해서 금방 고급 영어 작문이 가능한 것은 아닙니다. 이는 많이 써보고 고치는 과정을 통해서만 가능한 것이겠죠. 다만, 책에서 지적하고 있는 빈번하게 발생하는 실수들을 피할 수 있고, 헷갈리는 어법이라던지 스타일 등에 대한 길잡이가 될 수 있을 것 같네요. 영어로 논문을 써야하는 모든 학생들, 영어로 보고서를 써야 하는 직장인들, 일반적으로 영작을 공부하고 싶은 모든 사람에게 추천하고 싶은 책입니다. 한번 저처럼 가벼운 마음으로 풉, 하고 웃으며 쭉- 훑어보고 필요할 때 다시 찾아보면 좋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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