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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첫빛의 일상/사색

또 하나의 쉼표, 그리고 다시 일상으로

약 3주간 워싱턴 디씨에 머물러 함께 지내셨던 어머니가 바로 10분 전 다시 인천행 비행기를 타고 돌아가셨습니다. 어머니의 워싱턴 방문은 이번이 두 번째였는데, 이렇게 길게 여행을 오신 것은 어머니 생전 처음이시기도 하고, 저로서도 어머니와 단 둘이 3주라는 긴 시간을 보낸 것은 처음이기에 모두에게 새롭기도 하고 특별한 경험이었습니다. 

그러나 사실 2012년부터 지금까지 약 3년 반이라는 시간은 줄곧 제 삶에 있어서는 쉽지만은 않은 시간이었고, 여전히 많은 고민이 남아있는, 어쩌면 버티고 이겨내야 하는 시간입니다. 마음 아파하실 것을 알기에 되도록 표현을 안하려 했지만 저는 생각하는 것이 얼굴 표정과 행동에 다 드러나는 편이기에 쉽지 않습니다. 더구나 3주라는 시간이 결코 짧지 않은 덕에 한국에서 함께 살 때 보시기에는 반짝반짝하고 뭐든 잘해보였던 딸의 약한 모습을 어머니에게 많이 보여야 했습니다. 


일을 제대로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았기에 사회 초년생으로서 하는 고민들, 결혼 적령기에 외국에 나와 살면서 여자로서 하는 고민들, 그리고 그 외에도 다른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는 한 인간으로서 하는 고민들, 부모님의 딸로서 하는 고민들... 특히나 첫 열흘 정도는 어머니와 함께 시간을 보내게 되어 반갑고 기쁘면서도 마음 한 구석이 붕 뜨고 공허한 제 상황에서 온전히 온 마음으로 함께 할 수 없다는 죄송함까지 더해져 한편으로 많이 힘들었습니다. 어머니께서는 하루에 한 번씩 기분이 오락가락하면서 많은 고민과 생각들이 거름망을 통해 조금씩 걸러지는 딸의 시간을 모두 지켜보셔야 했습니다. 

항상 자랑스런 딸이고 싶었던 저는 이렇듯 함께하는 시간 동안 자연스럽게 약한 모습도 보이고, 사회적 성공보다 인간이자 여자로서 행복한 삶을 우선순위에 두고 싶다며 이야기하기도 합니다. 사실 당신 입으로 제가 살아갔으면 하는 삶을 직접 말씀하신 적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어떤 생각으로 마음에 품고 계실 생각과 기대를 내비치시지 않으시는 줄 알기에 역설적으로 더 안타깝고 마음이 무겁기도 합니다.


이제는 어머니와 사회인으로서의 고민들, 여자로서의 고민들, 인간으로서의 고민들을 함께 공유하며 저도 어머니를 알아갑니다. 어머니는 약 30여년 전 어머니의 어머니의 마음을 이제 조금 이해하실 것 같다 하십니다. 이제 다시 폭풍과 같던 방황의 시간을 지나, 그리고 어머니와 함께했던 따뜻한 시간을 지나 일상으로 돌아가며 시간과 시간 사이에 쉼표를 찍습니다. "그리고,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래서..." 어머니의 쉼표와 저의 쉼표가 맞닿았던 그 순간 이후 우리는 각자 어떤 접속사로 문장을 이어가게 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