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냐, 아냐 사실은 때려 치고 싶어요
아 알겠어요 나는 사랑이 하고 싶어
아니 돈이나 많이 벌래
맞혀봐
어느 쪽이게?
얼굴만 보면 몰라
속마음과 다른 표정을 짓는 일
아주 간단하거든
어느 쪽이게?
사실은 나도 몰라
애초에 나는 단 한 줄의
거짓말도 쓴 적이 없거든
여우인 척, 하는 곰인 척, 하는 여우 아니면
아예 다른 거
-아이유, 스물 셋 中
가사를 듣고 무릎을 탁 쳤다. 나도 스스로 정의할 수 없던 심리상태에 대해 정확히, 혹은 정의하지 못하기 때문에 더 정확하게 표현하고 있는 그의 가사가 얼마나 위로가 되던지.
나처럼 말하면서 생각하는(think out loud) 유형의 사람은 아직 정리되지 않은 생각의 실타래를 즉흥적으로 풀어내는 경우가 많다. 때문에 유보되었던 본인의 선호와 판단은 시간이 갈수록 뚜렷해지기는 하나, 미처 생각해보지 못한 주제에 대해서는 앞뒤가 맞지 않는 말을 하거나, 이전에 했던 말과 모순되는 주장을 펼치기도 한다. 이때, 대화 상대에게 본인의 생각이 아직 정리되지 않았음을 미리 알려주면 불필요한 오해를 줄일 수 있다. 더욱이 대화 과정에서 파생하는 생각의 확장 과정을 통해 분산된 다양한 아이디어들을 보다 촘촘히 엮어가는 기회를 얻을 수도 있다.
반면, '나는 이런 사람이야.' '나는 이런 사람이 되고싶어'하고 스스로 정의한 본인의 틀에 맞추어 행동을 하면서도 맞지 않은 옷을 입은 것 같아 괴로워하는 경우도 있다. 이처럼 내면의 모순에서 비롯한 미확정의 상태에 봉착할 경우, 스스로 이 사실을 자각하기까지 시간도 걸리거니와 본인이 추구하는 자아와 실제 자아 간의 간극을 타인에게 내비치는 것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모순을 극복하기가 어려워진다. 사실 "때려치고 싶고," "돈이나 많이 벌고 싶은" 마음을 어렴풋이 드러내는 것조차 얼마나 용기가 필요한 일이던가. "지금 이대로도 좋고," "사랑이 하고 싶은" 본인은 송두리째 위선이라 비난받고 부정당할지도 모르는 일인데.
그러나 더욱 우려할만한 상황은, 내면의 모순을 자각했을 때 발생할 수 있는 스스로에 대한 비난과 괴로움이다. 이는 예컨대 "착한 아이 컴플렉스" 혹은 "나이팅게일 컴플렉스"를 가지고 있는 사람에게서 자주 나타날 수 있다. 모든 이에게 사랑받고 싶고, 좋은 사람이고자 하는 욕구는 스스로를 억압하는 형태로 나타날 수 있다. "돈이나 많이 벌고 싶은 나"는 속물적인 것이 아닌가, "때려치고 싶은 나"는 너무 무책임한 것은 아닌가 엄격한 자기검열 하에 양자의 자아 중 한 면은 존재를 완전히 부정당할 수 있다. 이때 "옳은 것"의 판단의 기준은 논리적인 근거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오직 준거집단의 가치에 기반하고 있을 확률이 높다.
그렇다면 이를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 것인가. 내가 "여우"임을 그대로 다른 이들에게 드러내도 되는 것인가. 무책임하게 '자아를 그대로 드러내라'는 조언은 오히려 갈 곳 잃은 자아를 더욱 괴롭게 할 수 있다. 어렴풋하게나마 선(善)과 비선(非善)에 대한 판단이 섰을 때, 본인을 비선(非善)과 일치시킬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있겠는가. 또한 모두가 이상을 실현에 대한 믿음으로 추구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이와 보다 가까워지기 위해 노력할 뿐이다.
그러나 이상적인 담론에만 갇혀있는 주장 역시 힘이 없기는 마찬가지이다. 본디 토론은 상대방의 생각의 기저를 파악하는 데에서 시작하며, 이에 대응하는 주장만이 설득력을 갖는다. 여기서 "상대방"을 "내면의 본성," 혹은 "스스로 부정하고 싶은 낯뜨거운 생각"으로 치환시켜도 해당 명제는 유효하다. 담론이 현실이 될 때, 인간의 본성과 이상 간의 간극의 밑낯은 보다 적나라하게 드러나며, 특히나 윤리적인 문제의 "실천"과 관련하여 힘을 잃는다 - 본인이 인종차별주의자가 아니라는 주장에 대해서 얼마나 자유로운가, 모든 인간은 평등하며 존엄하다는 주장에 대해 실천적으로 공감할 수 있는가.
사고와 판단, 그리고 이에 비롯한 행동이 일치될 때, 사람의 삶은 모멘텀(momentum)을 가질 수 있다. 앞으로 글을 통해 나 스스로의 밑낯을 들여다보는 연습을 조금씩 해보고자 한다 - 미완(未完) 혹은 유보된 존재로서의 무엇이 아니라 온전히 나이기 위해, 그리고 내가 추구하는 선(善)의 가치를 수동적으로 믿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실천하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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